오늘은 원주지역의 3대 절터 중 하나라는 흥법사지에 대해 얘기해 본다.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517-2번지 인근에 위치한 흥법사 절터는 신라시절 세워져 고려 왕건의 명으로 중창되었다고도 하지만 이 역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를 참 왜놈들 이래저래 많이도 망가뜨려 놓았다는 생각이다. 현재 이 곳엔 흥법사지삼층석탑과 진공대사탑비 정도만 남아있고 염거화상탑과 진공대사탑 및 석관은 역시 일본인들에 의해 반출되었다가 역시나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내에 보관 중이란다. 안타까운 일이다.
실제 당시에도 남한강 물길은 다르지 않았을 것을 예상하면 참 풍경좋은 곳에 절이 자리잡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결국 폐사가 되어버린 흥법사는 그 절의 규모가 만여평이 넘었다고 하고 수행을 위해 찾는 스님들의 수가 수백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절터 대부분이 개인소유의 토지라 발굴자체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들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몇 년 전 이 곳을 찾았을 때도 농가주변 간간히 기왓장이 널부러져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어쩌면 흔적만 남은 천년 고찰의 일부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진공대사탑비
통일신라 말 고려초 까지 활약했던 진공대사를 기리기 위한 비문을 새겨놓은 것이다. 하지만 비문이 새겨져 있는 몸돌은 깨어져 지금은 받침돌과 머릿돌만 이 곳에 남아있다. 거돈사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곳의 비를 이고 있는 돌거북의 얼굴 역시 용의 머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거북의 등껍질 부분에는 정육각형의 무늬가 있는데 그 안에는 만 卍자와 연꽃이 새겨져 있다. 머릿돌에는 총 6마리의 용이 앞뒤에서 사방을 주시하고 있어 웅장한 기운이 넘친다. 이런 사연이 있는 유적인 것도 모르고 십여년 전 쯤 지금은 호주에 있는 내 조카가 이 위에 올라앉아 기념촬영을 했을 정도로 당시엔 울타리도 안내판 하나 없이 관리가 전혀 안되어있던 곳이다.
사진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사진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진공대사
속성은 김씨요,신라 왕족의 후예였던 그는 진성여왕 때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인 구족계를 받고 당에 유학한 후 돌아와서는 왕사가 되었다 한다. 이후 고려 태조에 이르러서도 왕사가 되었으며 그의 입적에 태조가 친히 비문을 내려 원주 영봉산 아래 흥법사에 세워주었다고 한다. 경덕왕 재위기간 활동해 안민가.찬기파랑가 등을 향가를 남긴 충담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 같다.
진공대사탑 및 석관
당시 승려의 경우도 화장 뿐만 아니라 매장까지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그 생성 연대는 고려 태조 때였을 거라고 한다. 역시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내에 소장되어있다.
사진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염거화상탑
생년은 알 수 없는 통일신라 말의 가지산문의 2대 교조 염거화상의 사립탑이다.설악산 억상사에 머물며 선을 알리는데 힘을 썼다고 한다. 본디 사리탑은 이 곳 흥법사지에 있었다고 하나 이 역시 정확하지는 않고 탑골공원,경복궁을 거쳐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탑을 옮겨 세울 대 발견된 금동탑지를 통해 통일신라 문성왕 때 탑이 세워졌음을 추정한다. 사리탑 중에 가장 오랜 것으로 이후 대부분의 사리탑이 이 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사진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안창리 흥법사지 삼층석탑
기단과 탑신의 불균형이 특징이다. 기단을 2단으로 두고 그 위로 기와집을 얹은 듯한 탑신을 3층으로 놓았다. 그 돌의 구성이나 조각방식이 소박한 점으로 미루어 고려 전기의 작품이라고 보여진다.
사진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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